오늘은 교과서에 수록된 세계 위인 게일 고갱 고골리 고흐 공자 괴테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교과서 수록 세계 위인. 게일 고갱 고골리 고흐 공자 괴테
1. 게이 뤼삭(1778 - 1850)
프랑스의 화학자, 물리학자. 1802년 '압력이 일정하면 기체의 부피는 절대 온도에 비례하여 증가한다'는 샤를의 법칙을 확인했습니다. 1808년에는 '일정한 온도와 압력 아래에서 기체 상태의 반응이 일어날 때 반응물과 생성물의 부피 사이에는 간단한 정수비 관계가 성립한다;는 법칙을 발견했는데요. 이것을 배수 비례 법칙 또는 게이 뤼삭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또한 붕소의 분리법을 발견했으며, 요오드의 연구, 항생제 제조법의 개량 등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2. 게일(1863 - 1947)
우리 나라에 온 캐나다 선교사, 한국어 학자. 우리나라 이름은 기일. 토론토 대학을 졸업하고 1888년에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건너와 40여 년 동안 선교, 교육, 출판 사업에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성서를 우리말로 옮겼으며, 1895년에는 영국의 종교 설화 '천로역정'을 한글로 옮겨 펴냈습니다. 우리나라의 문화, 역사, 언어 등에 관심이 깊어 '과도기의 한국'등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썼으며, 최초로 '한영 사전'을 펴나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 우리나라의 고전을 영어로 옮겨 세계에 소개했습니다.
3. 고갱(1848 - 1903)
프랑스의 화가. 프랑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열일곱 살 때부터 6년 동안 선원으로 생활하다가, 파리에서 주식 거래소 직원으로 일했습니다. 이 무렵부터 인상파의 그림에 관심을 가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요. 서른다섯 살 때 출품한 그림이 입상하면서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1886년에 화가 고흐를 알게 되어 남프랑스의 아를에서 함께 생활하기도 했으나,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 올래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 뒤 문명 사회에 싫증을 느껴 남태평양의 타이티 섬으로 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생활을 뚜렷한 선과 강렬한 색채로 그렸습니다. 이 때 그린 그림 가운데 '타이티의 여인들'이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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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서 수록 세계 위인 게일 고흐 공자 괴테 |
4. 고골리(1809 - 1852)
러시아의 작가. 우크라이나 지바의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연극과 문학에 관심이 깊었습니다. 1831년 향토색 짙은 러시아 민화집을 내면서 작가로 나섰습니다. 토속적인 작품을 많이 쓰다가 나중에는 당시의 사회 현실을 비판하는 글을 썼습니다. '웃음과 눈물의 작가'로 불릴 만큼 사실적이고 감동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5. 고키리(1868 - 1963)
러시아의 작가. 일찍이 부모를 잃고 점원, 접시닦이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문학가가 되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1892년 '마카드 추드라'를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하여, 인간의 삶을 주제로 한 단편 소설을 많이 썼습니다.
1905년 혁명 때 옥살이를 했으며, 이듬해 외국으로 건너가 장편 '어머니'를 발표했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힘든 생활을 그린 작품을 많이 썼으며, 1913년 귀국하여 조국의 문학을 발달시키는 데 힘썼습니다.
6. 고야(1746 - 1828)
스페인의 화가, 마드리드 미술 학교를 졸업하고 이탈리라오 유학을 갔습니다. 귀국한 뒤 벽걸이 천의 밑그림을 그리다가 실력을 인정받아 궁정 화가가 되었으며, 쉰두 살에 수석 화가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스페인 풍속을 주로 그리다가, 궁정 화가가 되고 나서는 초상화를 즐겨 그렸습니다. 그는 작품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사실적이고 정열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7. 고흐(1853 - 1890)
네델란드의 화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소년 시절부터 고독을 좋아하고 한 가지 일에 열중하는 성격이었습니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기전까지 설교사, 서점 점원 등 여러 직업을 거쳤습니다.
그는 노동자, 농민 등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을 강렬한 색채로 표현하여,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약 100점의 유화와 800여 점의 데생 등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화가 고갱과 같이 생활하면서 성격이 너무 맞지 않아 벌인 다툼으로 자신의 귀를 자르는 등 정신병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서야 인정을 받았습니다.
8. 공자(서기전 551 - 서기전 479)
중국 춘추 시대 노나라의 학자. 유고의 창시자이며, 세계 3대 성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가난 속에서 꾸준히 학문을 닦았으나, 쉰한 살이 되어서야 재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뛰어난 정치적 솜씨를 발휘했으나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벼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 뒤 노나라를 떠나 13년 동안 각지를 돌아다니며 제후들에게 '인의'와 '정도'에 의한 왕도 정치를 가르치고 다녔습니다. 예순여덟 살에 고향으로 돌아와 오로지 제자들의 교육과 학문을 연구하는 데에만 전념했습니다. 그의 사상과 가르침은 그의 제자들이 엮은 '논어'를 통해 알려져 있으며, 중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모든 나라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9. 괴테(1749 - 1832)
독일의 작가, 시인, 프랑크푸르트의 부유한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열여섯 살 때 라이프치히 대학에 들어가 법률을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기도 했으나, 스물다섯 살 때 발표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작가로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시인 실러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으며, 이 기간 동안 가장 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파우스트'를 비롯해서 많은 시, 소설, 평론을 남긴 그는, 독일 최고의 문학가이자 세계 문학사에 큰 빛을 남긴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0. 구양수(1007 - 1072)
중국 송나라의 문인. 집안이 가난해서 그의 어머니는 모래 위에 갈대로 글씨를 써서 그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열 살 때 당나라의 한유가 쓴 책을 읽은 것이 문학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되었습니다. 스물세 살 때 벼슬길에 올라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왕안석의 개혁에 반대하여 벼슬에서 물러났습니다. 당송 8대가의 한 사람인 그는 화려하고 형식적인 글 대신에 고전적인 문장을 써서 이름난 글을 많이 남겼습니다.
11. 규양순(557 - 641)
중국 당나라의 서예가. 젊었을 때부터 서예에 뛰어나 고구려에까지 이름을 날렸습니다. 이름난 서예가인 왕희지, 왕헌지 부자에게 글씨를 배우다가, 뒤에 독자적인 글씨체를 만들었습니다.
구양순의 글씨체는 모두 반듯하고 흐트러짐이 없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의 뛰어난 글씨체는 우리나라에도 알려져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까지 구양순체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우세 남, 저수량과 함께 당나라 초기의 3대 서예가로 꼽힙니다.
이상 교과서에 수록된 세계 위인 게일 고갱 고골리 고흐 공자 괴테에 대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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