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리말/마실거리 먹을거리 관련된 순우리말. 고두밥 다지기 소나기밥 또깨비뜨물

 오늘은 마실거리와 먹을거리와 관련된 순우리말 고두밥 다지기 구메밥 대궁밥 강다짐 머드러기 등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마실거리와 먹을거리에 관련된 순우리말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마실거리 먹을거리 관련된 순우리말 고두밥 다지기 도깨비뜨물

1) 고두밥
고두밥은 알갱이가 꼬들꼬들한 된밥입니다. 밥은 지어진 상태나 조리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립니다. 물기가 많으면 '진밥' 그리고 물이 적으면 '된밥'이라 합니다. 된밥 중에서도 그냥 먹기 힘들 정도로 쌀 알갱이가 '꼬들꼬들한' 된밥이 '고두밥'입니다.



술을 빚으려면 찹쌀이나 멥쌀, 조 등을 시루에 쪄서 '지에밥'이라는 술밥을 지어야 합니다. 이 지에밥이야말로 고두밥의 대표적인 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그릇 위까지 수북이 퍼 담은 밥은 '감투밥' 또는 '고봉밥'이라고 불렀습니다. 요즘엔 식량이 부족해서 굶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옛날에는 식량난이 심각하여 가난한 서민들은 감투밥, 고봉밥을 베불리 먹어보는 게 소원인 적이 있었습니다.



2) 강다짐
강다짐은 국이나 물 없이 마른밥을 먹는 것입니다.
'강다짐', '강울음', '강울음', '강바람' 따위 말에서 '강-'은 '메마르다'라는 뜻을 가진 접두어로 사용됩니다. 또한 '강술'은 바늘에 실이 따르듯이 당연히 따라야 할 것이 없는 상태를 뜻하기도 합니다.


'-다짐'은 '허기짐을 달래다'는 뜻의 접미어로 사용되며 '초다짐', '조다짐'이 이에 해당합니다. '강다짐'은 술적심(숟가락을 적심)할 만한 국이나 물 없이 마른밥을 먹는 것을 말합니다. 주로 들판에서 일을 하다가 급하게 먹는 먹이입니다. 한편 주는 것도 없이 남을 억지로 부리거나 덮어놓고 억눌러 꾸짖는 것을 '강다짐하다'라고 하는데요. 여기서의 '강-'은 메마르다는 뜻이 아니라 강압적이고 강제적인 태도를 의미합니다.



3) 구메밥
구메밥은 감옥에서 좁은 구멍을 통하여 죄수에게 넣어주는 밥입니다. 밥을 먹는 때와 장소에 따라서 부르는 이름이 다양한데요. 둘에서 김맬 때 먹는 '기승밥', 신령에게 제사 지낼 때 올리는 '노구메', 드난살이 하면서 얻어먹는 '드난밥'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감옥에서 좁은 구멍을 통하여 죄수에게 넣어주는 밥은 '구메밥'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구메밥 먹다'라고 하면 '감옥살이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구메는 '구멍'을 뜻하는 옛말이며 일제 시대 이후에 한동안 이 구메밥에 콩이 섞여 나왔습니다. 그래서 감옥살이를 은어로 '콩밥 먹는다'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콩밥은 사리진 지 오래 되었습니다.



4) 대궁밥
대궁밥은 밥그릇 안에 먹다 남은 밥입니다. 군대 속어 중에 '짬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군대 경력'과 '먹다 남긴 밥'이라는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되며 한자말 '잔반'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잔반을 우리말로는 '대궁밥' 또는 '군밥'이라고도 하는데요. 깨끗이 먹다 남은 대궁밥을 새 밥과 섞어서 지어 먹은 것을 '되지기'라 합니다. 요즘에는 대궁밥은 있지만 이를 되지기해서 먹는 일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5) 다지기
다지기는 고추, 마늘 따위를 함께 섞어 다진 양념이며 김장을 할 때 절인 배추나 무를 버무리기 위하여, 여러 가지 재료를 다져서 만든 양념이 바로 '다지기'입니다. 또한 국밥 따위를 말아서 먹을 때 넣어 먹는 양념도 다지기입니다. 얼큰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설렁탕이나 칼국수 등을 먹을 때에는 벌겋게 다지기를 풀어서 먹기도 합니다. 이를 두고 '다대기'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다지기'가 올바른 표현입니다.



마실거리 먹을거리 관련된 순우리말 고두밥 다지기 소나기밥 



6) 도깨비뜨물
또깨비뜨물은 '술'의 다른 이름입니다. 옛날 민가에서 담가 마시던 농중는 그 빛깔만 보면 마치 허연 쌀뜨물과 비슷하지만 많이 마시면 무슨 조화를 부린 것처럼 사람의 정신을 오락가락 하게 만들었습니다. 술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며, 과음을 경계하라는 뜻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7) 모둠밥
모둠밥은 여러 사람이 내 것 네 것 없이 같이 먹기 위하여 많이 담은 밥입니다. '모둠'은 여러 사람이 모인 단체를 말하며 옛 농경사회에서 여럿이 함께 들일을 할 때 일일이 별도의 밥그릇을 챙겨 가는 것이 번거로워 큰 함지박에 한꺼번에 밥을 담아서 일을 하다가 둘러앉아 먹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둠밥'입니다.



8) 머드러기
머드러기는 무더기로 있는 과실이나 생선 중에서 가장 굵거나 큰 것입니다. 시장에 가서 과일이나 생선 따위를 살 때 한참 동안 뒤적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가격이면 조금이라도 더 큰 과일, 조금 더 살진 생선을 사려는 마음에서 고르고 고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른 물건을 '머드러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과일아니 생선에만 머드러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 중에서도 어떤 쓸 만한 일이나 쓸 만한 사람을 두고 머드러기하고 하며 한자말로는 '군계일학'이 이에 해당합니다.



9) 소나기밥
소나기밥은 보통 때는 그다지 많이 먹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무섭게 많이 먹는 밥을 의미합니다. 간혹 한법 입맛이 당기기 시작하면 무한정 먹어버리는 사람이 있는데요. 이렇게 많이 먹는 밥을 '소나기밥'이라고 합니다. 이는 건강을 해치는 식사습관입니다. 또한 보통 때는 술을 잘 먹지 않다가 한번 입을 대면 많은 양의 술을 먹는 것을 두고 '소나기술'이라고 합니다.



10) 볏술
볏술은 가을에 벼로 갚기로 하고 외상으로 먹는 술입니다. '외상 없는 술장사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외상술에 얽힌 일화는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가을에 벼로 갚기로 하고 외상술을 먹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11) 숫음식
숫음식은 만든 채 그대로인 헐지 않은 음식입니다. '숫-'은 잡된 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것을 뜻하는 접두사입니다. 때 묻지 않은 물건을 두고 '숫것'이라고 하며 또 거짓 없이 순수한 사람을 '숫사람'이라고 합니다. 또 이런 사람을 두고 '숫티'가 난다고 표현합니다.



12) 술적심
술적심은 국, 찌개와 같은 국물이 있는 음식 즉 숟가락을 적실만한 음식입니다. 밥과 함께 국이나 찌개를 먹는 것은 우리나라 특유의 식습관인데요. 이런 음식 문화에 길이 든 밥상에는 지금도 국물이 함게 오릅니다. 이런 음식을 일러 '술적심'이라고 합니다.


'술적심'에서 '술-'은 숟가락을 의미하며 즉 '숟가락을 적시다'라는 뜻인데 결국 이는 입 안을 국물로 적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13) 입시
입시는 옛날에 하인이나 종이 밥 먹는 것을 낮게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말은 신분 구별이 뚜렷한 편입니다. 특히 밥에 관련된 말은 더욱 그렇습니다. 신분에 따라 밥을 나누면 임금님의 밥은 '수라' 윗사람의 밥은 '진지' 아랫사람의 밥은 '입시'이며, 입시는 신분이 가장 낮은 밥입니다.



14) 언덕밥 
언덕밥은 솥에 쌀을 언덕지게 안쳐서 안쪽은 질게 한쪽은 되게 지은 밥입니다. '고깔밥'이나 '감투밥'은 밥을 그릇에 담은 모양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고, '언덕밥'은 밥을 안칠 때의 모양에 따라 붙인 이름입니다. 진밥을 좋아하는 사람과 된밥을 좋아하는 사람이 함께 사는 경우에 양쪽 모두의 입맛을 맞출 수 있는 발상인 것입니다.



15) 지레뜸
지레뜸은 밥이 뜸이 들기 전에 지레 푸는 일 또는 그런 밥입니다. 요즘엔 여러 기능을 갖춘 전기 밥솥이 나와서 쌀을 안쳐 놓기만 하면 저절로 밥이 되지만 재래식 솥에 밥을 하는 경우에는 뜸을 제대로 들이는 건 힘든 일이었습니다. 밥 짓는 일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지레뜸으로 일을 망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일이든 너무 성급하게 굴어서 지레뜸 들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16) 칼제비
칼제비는 밀방망이로 밀어 고르게 된 밀가루 반죽을 칼로 썰어서 물에 끓인 음식입니다. 밀가루 반죽을 손대중으로 떼어내어 물에 넣고 끓인 음식을 일러 '손 수'자를 써서 '수제비'라 하며, 손으로 떼어 내지 않고 밀방망이로 밀어 고르게 된 밀가루 반죽을 칼로 썰어서 물에 끓인 음식을 '칼제비'라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수제비'는 사용되고 있지만 '칼제비'라는 말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칼국수'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칼국수는 밀가루 반죽을 국수처럼 길게 썬 것이고, 반죽을 깍뚜기처럼 굵직한 조각으로 썰어서 물에 끓인 것을 '칼싹두기'라고 합니다. 이러한 칼국수와 칼싹두기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 바로 '칼제비'입니다.



17) 칼나물
칼나물은 절에서 칼치 따위의 생선을 은밀히 이르는 말입니다. 절에 사는 스님들은 차를 마시되 술은 마시지 않고 나물은 먹되 고기는 물론 생선도 먹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더러 음식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술과 고기를 몰래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칼나물'은 그런 스님들 사이에서 쓰는 은어 중 하나이며, 술을 두고 '곡차'라고 하며 칼치(갈치) 따위의 생선을 '칼나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18) 피골집
피골집은 돼지의 차작 속에 쌀, 두부 나물 따위를 양념하여 이겨서 넣고 삶은 음식 즉 순대입니다. 순대는 원래 돼지의 창자를 껍질로 쓰는 까닭에 그 생김새가 흉측했으나 그 생김에 비하여 매우 인기 있는 음식입니다. 삶은 것을 그냥 썰어서 먹기도 하지만 순대국, 순대볶음 등 요리법도 다양합니다. 이런 수대를 두고 다른 말로 '피골집'이라 했습니다.



19) 흘떼기
흘떼기는 짐승의 힘줄이나 근육 사이에 박힌 얇은 껍질로 된 질긴 고기입니다. 짐승의 힘줄이나 근육 사이에 박힌 고기는 얇는 껍질이 많이 섞여 있기 때문에 꽤나 질깁니다. 이 질긴 부위를 두고 순우리말로 '흘떼기'라고 합니다.


또한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매우 끈질기게 달라붙는 사람을 빗대어 부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뻔히 질 장기에서 안 지려고 떼를 써 가며 끈질기게 두는 장기를 두고 '흘떼기장기'라고 합니다.



이상 마실거리 먹을거리와 관련된 순우리말 고두밥 다지기 소나기밥 도깨비뜨물에 대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끈기와 노력에 관련된 한자성어. 마부위침(摩斧爲針)의 뜻과 유래

 오늘의 한자성어는 '마부위침(摩斧爲針)'입니다. 먼저 뜻을 안내하고 마부위침과 관련된 유래도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끈기와 노력에 관련된 한자성어 마부위침(摩斧爲針)의 뜻과 유래

마부위침(摩斧爲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摩 : 갈 마, 닳을 마
斧 : 도끼부, 찍을 부
爲 : 할 위, 만들 위
針 : 바늘 침, 바느질할 침



이는 작은 노력일지라도 끈기 있게 계속 해나간다면 언제가는 그 뜻을 반드시 이룬다는 뜻입니다. '낙숫돌이 댓돌을 뚫는다'는 속담이 이 마부위침과 비슷한 뜻의 속담인데요.  낙숫물은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을 뜻합니다. 이렇게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도 세월을 거듭하면 딱딱한 댓돌을 뚫듯이, 포기 하지 않고 끈기 있게 노력하면 결국 뜻한 바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이와 비슷한 의미의 속담으로는 '작은 도끼도 연달아 치면 큰 나무를 눕힌다'와 '무쇠도 갈면 바늘이 된다'가 있습니다.


이어서 마부위침에 대한 유래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끈기와 노력에 관련된 한자성어 마부위침




마부위침(摩斧爲針)의 유래

중국 당나라의 '이백(이태백)'은 높은 학문의 경지에 올라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인물입니다. 이백의 이런 명성 뒤에는 어린 시절부터 비롯된 성실함과 꾸준한 노력 덕분인데요. 이백은 어린 시절 상의산으로 들어가 유명한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부에 싫증이 난 이백은 스승에게 어떠한 말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고 그 길로 하산을 합니다. 그렇게 집을 향해 하산을 하던 중 한 할머니가 열심히 바위에 도끼를 갈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 모습이 궁금하여 할머니께 묻자, "바늘을 만드려고 도끼를 간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대답을 들은 이백은 어리둥절 하자 이백에게 할머니는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계속한다면 가능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할머니의 말씀에 큰 감명을 받은 이백은 그 길로 바로 다시 산에 올라가 마음을 다잡고 마음이 해이해질때마다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며 학문에 입했습니다.



👉그래서 마부위침을 뒤고 '마부작침(摩斧作針)'이라고도 합니다.


마부작침(摩斧作針)


摩 : 갈 마
斧 : 도끼 부
作 : 지을 작
針 : 바늘 침, 바느질할 침



커다란 도끼가 작고 가는 바늘이 되려면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과 필요합니다.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이라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끈기를 갖고 노력한다면 결국 그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상 끈기와 노력에 관련된 한자성어, 마부위침과 마부작침의 뜻과 유래에 대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어휘/역사와 관련된 어휘. 유물 계승 침략 급제 유형 문화재 무형 문화재

 오늘은 역사와 관련된 초등 교과서 어휘 유물, 계승, 침략, 급제, 유형 문화재, 무형 문화재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역사와 관련된 어휘 유물 계승 침략 급제 유형 문화재 무형 문화재

1. 역사 : 사람들이 살아온 모습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해온 과정입니다.
예) 우리나라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2. 유물 : 옛날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물건입니다.
예) 우리는 유물을 통해서 옛날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유물이나 예술품을 수집, 보관, 전시하여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거나 연구하는 시설을 '박물관'이라고 합니다.



3. 신분 : 한 사람이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역할이나 지위입니다.
예) 조선 후기는 신분제도가 몰락한 시기입니다.


* 조선시대에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신분이 나뉘었습니다. 이 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살 수 있는 집과 입을 수 있는 옷, 가질 수 있는 직업이 달랐습니다.



4. 유적지 : 역사적 유물이나 유적이 있는 곳입니다.
예)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천마총에 다녀왔습니다.

역사와 관련된 어휘 유물 계승 침략 유형 문화재 무형 문화재



5. 계승 : 조상의 전통이나 문화, 업적 등을 물려받아 계속 이어 나가는 것입니다.
예)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 계승과 비슷한 말로 '전승'이 있습니다. 전승은 문화, 풍속, 제도 등을 물려받아 이어 감, 또는 그것을 물려주어 잇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6. 전통 :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면서 만들어진 생각, 행동 양식입니다.
예) 김치는 우리나라의 전통 음식입니다.


* 전통은 전통 음식, 전통 옷, 전통 놀이처럼 예로부터 내려온 고유한 문화나 생각, 행동을 말합니다. 전통을 잘 이어 나가는 것은 우리 문화 발전에 매우 중요합니다.



7. 침략 : 정당한 아유 없이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는 것입니다.
예) 을지문덕 장군은 수나라의 침략을 물리치고 살수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침범하다의 '침(侵)'은 '들어갈 수 없는 곳에 함부로 들어가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입니다. '침입(侵入)'은 남의 땅이나 나라, 권리, 재산들 함부로 넘어 간다는 뜻입니다. '침공(侵攻)'은 침입해서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8. 급제 : (옛날에) 과거 시험에 합격한 것을 뜻합니다.
예) 그는 과거에 급제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나라를 다스릴 관리를 뽑기 위해 보았던 시험을 '과거'라고 합니다. 이때 '진사'나 '생원'은 과거 시험 1단계에 합격한 사람을 부르는 말입니다.



9. 제국 :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를 뜻합니다.
예) 1897년 고종은 황제 즉위식을 올리고 대한 제국을 세웠습니다.


*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지배하던 35년간의 시기를 '일제 시대' 또는 '일제 강점기'라고 합니다. 여기서 '제'는 제국을 의미하며, '일제강점기'는 일본 제국이 강제로 우리나라를 차지하던 시기라는 뜻입니다.



10. 식민지 : 힘이 센 다른 나라에게 정치적, 경제적으로 지배를 받는 나라입니다.
예) 대한민국은 과거 일본의 식민지였습니다.



11. 보존 : 중요한 것을 잘 보호하여 그대로 남기는 것입니다.
예) 우리는 후손을 위해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 '보존'과 헷갈리기 쉬운 단어로 '복원'이 있습니다. '복원(復元)'은 원래의 상태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뜻입니다. 문화재나 유물을 원래의 모습처럼 복원하는 일은 까다롭고 어렵습니다. 



12. 문화재 :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서 법으로 보호를 받거나 받아야 하는 유물 및 유적입니다.
예)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다양한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 문화재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유형 문화재 -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모양과 형태가 있는 문화재.
무형 문화재 - 노래, 춤, 연극과 같이 구체적인 모양이 없는 문화재.



13. 광복 : 빼앗긴 주권을 다시 찾은 것을 뜻합니다.
예)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14. 분단 : 본래 하나였던 것이 둘 이상으로 나뉘어지는 것입니다.
예) 우리나라는 분단 후 현재 휴전 중입니다.


* 미국과 소련은 위도 38도를 기준으로 한반도를 둘로 나누어 남한에는 미군, 북한에는 소련군이 들어왔습니다. 이때 한반도를 둘로 나눈 선을 '38선'이라고 합니다.



15. 이산가족 : 국토의 분단이나 전쟁 등의 사정으로 이리저리 흩어져서 서로 소식을 모르는 가족입니다.


* 이산가족이 다시 만나는 것을 '상봉(相逢)'이라고 합니다. 이때 '상봉'은 서로 만난다는 뜻입니다.


16. 겨례 : 같은 조상을 섬기며 역사를 함께하는 민족입니다.
예) 지금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지만 우리는 한겨레입니다.


* '민족(民族)'은 오랫동안 일정한 지역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고유한 언어, 문화, 역사를 이룬 사람들의 집단을 말합니다. '동족(同族)'은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민족이라는 뜻입니다. '동포(同胞)'는 같은 나라나 민족에 속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상 역사와 관련된 어휘, 유물 계승 침략 급제 유형 문화재 무형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교과서 수록 세계 위인/듀이 드보르자크 두보 드뷔시 들라크루아

 오늘은 교과서에 수록된 세계 위인 듀이 드보르자크 두보 드뷔시 들라크루아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교과서 수록 세계 위인 듀이 드로르자크 두보 드뷔시 들라크루아

1. 돌턴(1766 - 1844)
영국의 화학자, 물리학자이며 컴벌랜드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열두 살 때 고향 마을의 학교 교사를 했으며, 열다섯 살에는 형과 학교를 경영했습니다. 이무렵부터 기상 관측을 시작, 57년간 2만 회의 관측을 했습니다. 


자신이 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색맹 연구에 힘써 중요한 연구 업적을 남겼으며, 기체에 관한 연구 등으로 화학 발전에도 큰 몫을 했습니다. 근대 원자론을 제시해, 근대 물리 과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 - 1616)
일본의 장군이며 무사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세력이 컸던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어, 내전의 어려움을 이겨 내면서 세력을 키워 나갔습니다. 노부가가가 죽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치적 지위를 이어받자, 두 사람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뒤 기반을 강화해 나가다 히데요시가 죽은 뒤 히데요시의 지지 세력을 물리치고 천하의 패권을 차지했습니다. 전국 통일을 이룩하여 이후 260여 년 동안 계속되는 에도 막부 시대를 열었습니다.



3. 두보(712 - 770)
중국 당나라 중기의 대표적 시인입니다. 일곱 살 때 처음 시를 지었습니다. 스무 살 때부터 각지를 방랑하면서 이백을 만나 술과 시를 벗하며 사귀었습니다. 한때 벼슬길에 오르기도 했으나,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자 다시 방랑하며 가난과 전쟁의 어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엄격한 시형식을 통해 인생의 슬픔과 아름다움을 깊이 있게 표현했으며, 이백과 함께 중국 당대의 최고 시인으로 꼽히며, '시성'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4. 뒤낭(1828 - 1910)
스위스의 자선 사업가이며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습니다. 인정 많은 부모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병자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힘썼습니다. 1855년 YWCA의 창설에 참가했습니다. 


1862년 이탈리아 통일 전쟁 때 겪은 체험을 '솔페리노의 회상'이라는 책으로 펴내, 전쟁을 일으키지 말 것과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고 부상병을 구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제안이 유럽 각국의 큰 호응을 얻어 1863년 국제 적십자사가 창설되었습니다. 1901년에 최초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교과서 수록 세계 위인 듀이 드보르자크 두보 드뷔시


5. 듀이(1859 - 1952)

미국의 철학자, 교육학자이며 버몬트 주의 벌링턴 태생입니다. 버몬트 대학과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미시간 대학과 시카고 대학에서 교수로 있었습니다. 특히 시카고 대학에서는 자신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실험 학교를 7년 반에 걸쳐 운영했습니다.


그는 실험주의와 경험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학교를 사회와 연결시키고, 생활이 곧 교육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저서에 '민주주의와 교육', '인간성과 행위'등이 있습니다.



6. 뒤마(1824 - 1895)
프랑스의 극작사, 소설가입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쓴 뒤마의 사생아, 흔히 '뒤마 피스'라고 불립니다. 창녀의 순수한 사랑을 그린 '춘희'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습니다.


극작가로 활약하며 '금전 문제' , '사생아'등 주로 당시의 풍속이나 도덕, 사회 문제를 다뤘습니다. 재미있는 희곡들로는 1858년 발표한 '사생아'와 1859년에 발표한 '방탕한 아버지'가 있습니다.



7. 드보르자크(1841 - 1904)
옛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곡가입니다. 열일곱 살 때 프라하의 오르간 학교에서 2년 동안 공부한 것이 정규 음악 교육의 전부이며, 그 뒤로는 혼자서 공부했습니다. '모라바 2중창곡', '슬라브 무곡'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그는 1884년에 영국을 방문하여, 자신의 합창곡을 공연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음악으로서 민족 문화를 일으키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체코 국민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대표작으로 '신세계 교향곡', '슬라브 광시곡', '유모레스크'등이 있습니다. 물이 흐르듯 자연스런 그의 음악 속에는 체코 민족이 겪은 즐거움과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8. 드골(1890 - 1970)
프랑스의 군인, 정치가입니다. 육군 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제1,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 대담하고 뛰어난 지휘관이라는 평을 얻었습니다. 1940년 6월 육군 차관이 되었다가, 정부가 독일에 항복하자 영국으로 망명하여 프랑스 국민들에게 독일 항전을 계속하자고 호소했습니다.


1944년 해방된 조국에 귀국해서 임시 정부를 세우고 수상이 되었으나, 사회주의 세력과 대립하여 1947년 사임했습니다. 1958년 다시 수상 자리에 올랐으며 그 이듬해 국민 투표로 대통령이 되었다가 1969년 상원의 개혁 등에 관한 국민 투표에 져서 물러났습니다.




9. 들라크루아(1798 - 1863)
프랑스의 화가입니다. 파리에서 태어나 열일곱 살에 국립 미술 학교에 들어 갔습니다. 스승의 가르침보다는 루브르 미술관에 다니면서 그곳의 그림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셰익스피어나 바이런 등의 문학 작품을 그림의 소재로 삼는 한편 종교화와 역사화도 즐겨 그렸습니다.


기법에 있어서도 색채의 보색을 이용, 커다란 붓자국을 효과적으로 사용했습니다. '키오스섬의 학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등의 걸작품을 남겼으며 그 밖에 베르사유의 역사 박물관 등에 많은 대형 벽화를 제작했습니다. 19세기 낭만주의 예술의 대표적인 화가로,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0. 드뷔시(1862 - 1918)
20세기 음악의 기초를 확립한 프랑스의 작곡가입니다. 열 살 때 파리 음악원에 들어가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했습니다. 1884년 로마 대상를 받았고, 졸업 후 2년간 로마에 머무르면서 창작 활동에 전념했습니다.


1893년에 '선택받은 소녀'와 '현악 4중주곡'이 처음 연주되면서 파리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작으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달빛',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등이 있습니다. 그는 예민한 감각으로 가장 프랑스적인 작품을 발표했고, 끊임없는 음악적 변신으로 여러 부문에 걸쳐 다양한 곡을 작곡하여 음악의 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




11. 디아스(1450 - 1500)
포르투갈의 탐험가입니다. 전설적인 나라로 생각해 오던 에티오피아를 발견하라는 주앙 2세의 명령을 받고 아프리카 탐험에 나섰습니다. 폭풍으로 13일간 표류하다가 아프리카 케이프 반도의 끝인 케이프포인트플 발견하고, '폭풍의 곶'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이곳의 이름은 뒤에 국왕이 선원들의 공포를 덜어 주기 위해 '희망봉'이라 고쳤습니다. 대서양, 인도양을 지나 아시아에 이르는 항로를 개척했으나 항해 중 폭풍을 만나 죽었습니다.




12. 디오게네스(서기전 404? - 서기전 323?)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며 흑해 연안의 시노페에서 태어났습니다.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안티스테네스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욕심 없는 자연 생활을 이상으로 하는 '키니코스 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입니다. 그는 평생을 한 벌의 옷과 지팡이를 가지고 통 속에서 살았으며, 가난하지만 부끄러움 없는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이상 교과서에 수록된 세계 위인 듀이 드보르자크 두보 드뷔시 들라크루아에 대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교과서 수록 세계 위인/다윗 단테 달리 대처 데카르트 도스토예프스키

 오늘은 교과서에 수록된 세계 위인 다윗 단테 달리 대처 데카르트 도스토예프스키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교과서 수록 세계 위인 다윗 단테 달리 대처 데카르트 도스토예프스키

1. 다윗(서기전 1000 ? - 서기전 962 ? )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제2대왕이며,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이 죽자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하고 예루살렘을 서울로 정해 이스라엘 교를 확립했습니다. 정치, 문화 등 다방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겨 그가 왕위에 있는 동안 이스라엘 왕국의 황금기를 이룩했습니다. 시도 잘 써서 '구약 성서'의 '시편'에 그의 시가 많이 전해집니다.




2. 단테(1265 - 1321)
이탈리아의 시인이며 피렌체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홉 살 때 천사처럼 청순한 소녀 베아트리체를 만나 평생토록 그녀의 모습을 간직했는데,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그의 시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정치 싸움에 휩쓸려 후방된 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작품을 썼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신곡'입니다.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신곡'은 인생이나 종교, 유주에 대한 단테의 생각이 잘 나타난 작품으로 근세 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가 이탈리아 어로 작품을 쓴 까닭에 이후 수백 년 동안 이탈리아 어가 유럽에서 문학어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교과서 수록 세계 위인 다윗 단테 도스토예프스크 달리




3. 다임러(1834 - 1900)
독일의 기계 기술자. 발명가입니다. 기술 교육을 받은 후 여러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일하다 1882년에 엔진 시험 공장을 설립했습니다. 1885년에 오늘날 자동차 기관의 원형이 된 고속 가솔린 기관을 개발해 자전거 길을 열었습니다.


1889년에는 네 바퀴 자동차에 엔진을 달아, 자동차를 달리게 했습니다. 1890년에 다임러 자동차 회사를 설립해서 세계 최초로 자동차를 생산했습니다.




4. 대처(1925 - 2013)
영국의 여성 정치가입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으며 대학 졸업 후 독학으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1959년 보수당원으로 하원 의원이 된 뒤 교육, 과학부 장관 등을 지내는 등 빠른 속도로로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1975년 보수당 당수로 선출되었으며, 1979년에 영국 최초의 여성 수상이 되었습니다. 수상으로 있는 동안 영국의 경제 부흥에 힘쓰는 한편 아르헨티나가 점령했던 포클랜드 제도를 다시 빼앗았습니다. 정치력을 인정받아 세 차례나 수상에 당선되었으며, 1902년 이후 가장 오랫동안 수상의 자리에 있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5. 달마(? - 528 ?)
불교의 한 갈래인 중국 선종의 창시자입니다. 보리 달마 또는 달마 대사라합니다.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서 승려가 되었으며, 조용히 앉아서 정신을 통일시켜 온갖 번뇌를 끊고 무아의 상태에 빠져드는 선에 깊이 통했습니다.


520년경 중국 북부에 건너가 뤄양을 중심으로 활동했습니다. 마음을 갈고 닦아 깨달음에 이르는 부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에서 선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의 일파를 선종이라 했습니다. 뒷날 제자인 혜가에게 이어져 중국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6. 덩 샤오핑(1904 - 1997)
중국의 정치가입니다. 프랑스와 소련에서 공부한 후 귀국하여 공산당원으로 활약했습니다. 1952년 부총리, 1954년 당 중앙 총서기가 되었습니다. 문화 대혁명 때 반동파로 몰려 모든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1973년 다시 부총리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1976년 천안문 사건 때 뒤에 숨어 사건을 조종한 사람으로 몰려 다시 쫓겨났습니다. 1981년 당 주석 마오 뻐둥이 사망한 뒤 군사 위원회 주석으로 실질적인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7. 데카르트(1596 - 1650)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입니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수학에 관심이 많아 파리로 가서 수학을 배웠습니다. 수학자로서 그는 해석 기하학을 완성하여 근대 수학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기본 원리로, 모든 것을 의심하고 생각하는 것에서 철학의 방법을 찾았습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그는 스콜라 학파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처음으로 반대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방법 서설' , '철학의 원리'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8. 도연명(365 - 427)
중국의 대표적 시인입니다. 하급 귀족 출신으로 집이 가난하여 생활을 위해 지방 관청의 벼슬에 올랐으나 마흔한 살 때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숨어 살았습니다. 그 때의 마음을 읊은 것이 유명한 '귀거래사'입니다.


그는 전원 생활을 바탕으로 독특하고 쉽고 뜻이 깊은 시를 많이 지었습니다. 살아 있을 때 '전원 시인'이라 불리며 특별한 시인 대접을 받다가, 당,송나라 이후에 비로소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의 산문 작품으로 '오류 선생전', '도화원기'가 있습니다.




9. 도데(1840 - 1897)
프랑스의 소설가입니다. 직물업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자 중학교 보조 교사로 청소년기를 보냈으며 대학 진학은 포기해야했습니다. 열일곱 살에 형이 살고 있는 파리에 갔는데 그때부터 문학 수업에 전념했고 문단에도 드나드길 시작했습니다.


그가 쓴 많은 작품 중에 특히 스물다섯 살 때 쓴 '풍차 방앗간 편지'가 유명합니다. 그의 작품은 고향인 프로방스 지방의 인정과 풍속을 바탕으로 불행한 사람들을 동정하는 따뜻한 느낌이 담긴 것이 특징입니다.




10.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 -1598)
일본의 장군이며, 쾌활한 성격과 총명한 두뇌로 무사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일본의 패권을 잡기 위한 싸움에서 계속 해서 공을 세워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 뒤 실권을 쥐고 200년 이상 끌어온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일본 전역의 정벌에 나서 천하 통일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그 기세를 몰아 중국을 침략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략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병으로 죽었습니다.




11. 도스토예프스키(1821 - 1881)
러시아의 작가입니다. 모스크바에서 가난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소년 시절부터 문학을 좋아했습니다. 스물한 살에 고통받는 하층민의 생활을 그린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해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1849년 혁명 운동에 참여한 죄로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징역형으로 감형되어 시베리아로 유배되었습니다. 이 때 겪은 죽음의 체험을 '백치' '죄와 벌'이라는 작품에서 생생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 속 움직임을 날카롭게 파헤 친 뛰어난 작품을 많이 발표하여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상 교과서에 수록된 세계 위인 다윗 단테 달리 대처 데카르트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교과서 수록 세계 위인/뉴턴 니콜 닉슨 니체 다윈 설명 정리

 오늘은 교과서에 수록된 세계 위인 뉴턴 니콜 닉슨 니체 다윈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교과서 수록 세계 위인 뉴턴 니콜 닉슨 니체 다윈

1. 누르하치(1559 - 1626)
중국 청나라의 초대 황제입니다. 여진족의 추장으로서 부근의 부족들을 차례로 정복해 나가면서 세력을 확장해 1616년 '후금'이란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명나라의 대군을 격파하는 등 계속 세력을 뻗치다가 1626년 몽골과의 싸움에서 부상당하여 죽었습니다. 만주 문자를 만드는 등 민족의 발전과 통일에 힘썼으며, 청나라 왕조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2. 뉴턴(1642 - 1727)
영국의 물리학자, 수학자입니다. 1664년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연구에 몰두하여 여러 가지 발견과 발명을 했습니다. 혼자 살면서 연구에 몰두하여 여러 가지 발견과 발명을 했습니다. 


그중 '모든 물체 사이에는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는 만유 인력의 법칙이 가장 유명하다. 그 밖에도 1666년경 미문법을 발견했고, 1668년에는 반사 망원경을 만들어 전체 관측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왕립 학회 회장을 지냈고 앤 여왕으로부터 '나이트'라는 귀족 작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근대 과학의 건설자'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3. 뉴커먼(1663 - 1729)
영국의 증기 양수 기관의 발명가입니다. 대장간을 경영하면서 말을 이용해서 물을 뽑아 쓰는 것이 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알고 증기 펌프를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1712년 같은 고향 출신인 공학자 세이버리가 만든 증기 기관을 개량하여 증기 양수 기관을 제작했습니다. 이 기관은 광산이나 탄광에 보급되어 안에 고인 물을 뽑아 내는 데 이용되었습니다. 


와트의 증기 기관이 출현하기 전까지 60여 년간에 걸쳐 영국의 석탄 산업 발달에 크게 이바지 지했습니다.




교과서 수록 세계 위인 뉴턴 니콜 닉슨 니체 다윈




4. 니체(1844 - 1900)
독일의 철학자입니다. 본 대학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고전 문헌학을 공부했습니다. 일찍이 철학자 쇼펜하우어에 빠져들어 그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1869년 스위스의 바젤 대학 교수가 되었으나, 1879년 대학을 그만두고 이탈리아 각지를 떠돌며 생활했습니다.


그 뒤 과로로 인한 정신병에 시달리면서도 죽을 때까지 많은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비판하여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현실의 삶을 강조했습니다. 20세기의 철학, 신학, 심리학의 역사는 니체 없이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며, 지금껏 살았던 철학자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에 꼽힙니다.




5. 니진스키(1890 - 1950)
러시아의 무용가입니다. 부모가 모두 유명한 무용가로 그가 무용에 소질이 있다고 믿은 아버지에게 일찍부터 춤을 배웠습니다. 그 뒤 러시아의 황실 발레 학교에 들어가 공부했으며, 1909년 파리에서 창단한 러시아 발레단에 참가하여 세계 최고의 남성 무용수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는 고전 발레의 틀에 박힌 모습을 뛰어넘어 자유롭고 대담하게 표현함으로써 발레의 세로운 세계를 개척했습니다. 뛰어난 재능과 힘차고 우아한 표현 기술로 유명합니다.




6. 니콜(1866 - 1936)
프랑스의 세균학자입니다. 프랑스의 서북부 루앙에서 출생했으며 의학교를 마친 뒤 파리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루앙 의학 교수를 거쳐 튀니스에 있는 파스퇴르 연구소 소장을 지냈습니다. 발진티푸스 균이 이를 통해 전염된다는 것을 발견하여 1928년에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았습니다. 결핵, 홍역, 디프테리아 등에 대한 연구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7. 니콜라이 2세(1868 - 1918)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입니다. 1894년 황제의 자리에 올라 아시아로 세력을 뻗치려다가 러,일 전쟁에서 일본에 패했습니다. 제1차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국민들에게 의회를 만들기로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고, 다시 전제 정치를 실시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군에 참가해 직접 전쟁을 지휘했으나, 전쟁이 불리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식량까지 부족해서 국민들의 불만이 점차 커져 갔습니다. 결국 1917년 3월 레닌의 지도 아래 폭동이 일어나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11월 혁명 후에 가족과 함께 총살당했습니다.




8. 닉슨(1913 - 1994)
미국의 제37대 대통령입니다. 캘리포니아 출신이며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해군에 들어가 5년간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그 뒤 하원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계에 진출하여 상원 의원 부통령을 거쳐 1968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평화에 대한 새로운 정책인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여 세계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1972년에는 중국을 방문하여 동,서 화합에 힘썼습니다. 1974년 민주당 회의를 몰래 엿들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9. 다윈(1809 - 1882)
영국의 생물학자입니다. 의사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과 대학에 입학했으나 어려서부터 동, 식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곧 의학 공부를 그만 두었습니다. 1831년 배를 타고 약 5년에 걸쳐 지구의 남쪽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이때 수집한 화석 및 생물을 비교, 연구하여 '생물은 환경과 자체의 발전에 따라 단순한 구조에서 복잡한 구조로 차차 바뀌어 간다'는 진화론을 발표했습니다. 이 학설을 당시 종교계와 학계에서 큰 반발을 사기도 했으나, 차츰 인정을 받았습니다. '종의 기원', '가축과 재배 식물의 변이'등 생물 진화에 관한 책을 많이 썼습니다.




10. 다비드(1748 - 1825)
프랑스의 화가입니다.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스물여섯 살 때 화가로서 지위가 보장되는 로마 상을 받았습니다. 이듬해 로마로 유학을 떠나 고전 미술에 깊은 감명을 받고 신고전주의 이론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대 로마,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제정 등을 소재로 한 역사화를 많이 그렸으며 뛰어난 초상화가이기도 했습니다. 궁정 화가가 되어 '나폴레옹 대관식', '서재에 있는 나폴레옹' 등 대작을 완성했으나,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자 그도 물러나 벨기에로 망명했습니다.




이상 교과서에 수록된 세계 위인 뉴턴 니콜 닉슨 니체 다윈에 대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교과서 수록 세계 위인/나폴레옹 네로 난센 노벨 넬슨 노자 설명 정리

 오늘은 교과서에 수록된 세계 위인 나폴레옹 3세, 1세 네로 난센 노벨 넬슨 노자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교과서 수록 세계 위인. 나폴레옹 네로 난센 노벨 넬슨 노자 정리

1. 나폴레옹 3세(1808 - 1873)
프랑스의 황제입니다. 나폴레옹 1세의 조카. 1848년 2월 혁명이 일어난 뒤,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1852년 국민 투표를 통해 황제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독재 정치를 펼쳤습니다. 크림 전쟁, 이탈리아 통일 전쟁 등으로 영토를 넓히고 세력을 크게 떨쳤습니다.


프로이센과 벌인 전쟁에 실패하여 포로가 되었다가, 영국에 건너가 그곳에서 사망했습니다.



2. 나폴레옹 1세(1769 - 1821)
프랑스의 황제입니다. 코르시카 섬에서 태어나 1785년 파리의 육군 사관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포병 장교로서 프랑스 혁명에 참가한 뒤 점차 이름이 알려졌으며 쿠데타를 일으켜 1804년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뒤 유럽 대륙을 정복하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친 정쟁에 나섰습니다. 


놀라울만큼 총명하고 의지가 강했으나, 러시아 원정에 실패한 뒤인 1814년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나 엘바섬에 갇혔습니다. 이듬해 탈출하여 다시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워털루 싸움에서 연합군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귀양을 가서 일생을 마쳤습니다.


교과서 수록 세계 위인 나폴레옹 네로 난센 노벨




3. 네로(37 - 68)
로마의 제5대 황제입니다. 열여설 살에 황제의 왕에 올랐습니다. 처음 5년 동안은 스승 세네카의 도움을 받아 좋은 정치를 펼쳤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잔인해져 의붓동생, 어머니, 아내를 차례로 죽였습니다. 64년에 로마의 대경기장에 큰불이 나자 그 책임을 그리스도 교인들에게 뒤집어씌워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예술에 관심이 많아 시를 짓고 대중 앞에서 하프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기를 즐겼습니다. 68년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원로원과 군대에서 버림받자 로마를 탈출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4. 난센(1861 - 1930)
노르웨이의 탐험가입니다. 대학에서 동물학을 공부했으며 대서양과 북극해 사이에 있는 세계 최대의 섬인 그린란드를 탐험했습니다. 1893년부터 1896년까지 북극 탐험에 나서, 북위 86도 14분 지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당시까지 인간이 닿을 수 있었던 가장 북쪽의 지점이었습니다. 


또한 1908년 해양학 교수가 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과학을 연구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1920년 국제 연맹의 첫 회의에 노르웨이 대표로 참가했으며, 1차 세계 대전 중 포로가 된 사람들을 돌려 보내고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도와 주는 데 힘써 192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5. 네른스트(1864 - 1941)
독일의 물리학자, 화학자입니다. 취리히와 베를린 대학 등에서 공부한 뒤, 괴팅겐 대학의 교수로 있다가 베를린 대학의 실험 물리학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9년간 소장으로 일했습니다. 1906년에는 '네른스트 열 정리' 즉, 열역학의 제3법칙을 발견하여 물리학과 화학의 발전을 크게 앞당겼습니다. 


열역학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겨, 1920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으며, 응용 과학과 천체 물리학에도 관심이 많아 전등을 개량하기도 했습니다.



6. 노구치 히데요(1876 - 1928)
일본의 세균학자입니다. 후쿠시마현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화상을 입어 왼손이 불구가 되었으나 일찍부터 의학에 뜻을 두어, 일을 하면서 대학에 들어가 의학 공부를 했습니다.


1900년 미국으로 건거나 록펠러 의학 연구소 연구원이 되었으며, 독사의 독과 매독균을 연구하여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서아프리카에서 황열병을 연구하다가 자신이 그 병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7. 네루(1889 - 1964)
인도의 정치가입니다. 북인도 알라하바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영국에 유학,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인도로 돌아와 1916년 간디의 영향으로 독립 둔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여러 차례 감옥 생활을 하면서도 인도가 영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첫번째 수상이 되었습니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미국과 소련의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중립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습니다.



8. 넬슨(1758 - 1805)
영국의 해군 장교입니다. 열두 살에 해군에 들어가,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승무원을 지휘하는 함장이 되었습니다. 1794년에 코르시카 섬에 쳐들어가서 싸우다가 오른쪽 눈을 잃고, 1797년 세인트 빈센트 해전에서 오른쪽 팔을 잃었으나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1803년 영국에 상륙하려는 프랑스 함대를 무찔러 나폴레옹의 영국 침략을 막았으며, 나일강 전투 등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1805년 트라팔가르 해협에서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연합 함대와 싸우다가 승리를 눈앞에 두고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7. 노벨(1833 - 1896)
스웨덴의 발명가, 화학자입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기계 공학을 배웠습니다. 그후 폭약 만드는 일을 하던 아버지와 더 나은 폭약을 만들기 위해 연구에 몰두했는데, 이 과정에서 막내 동생과 몇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1876년 드디어 '다이너마이트'라는 안전한 폭약을 개발해, 철도, 토목 등의 발전에 이바지했습니다. 1886년 다이너마이트 회사를 세워 큰 부자가 되었으나 자신의 발명품이 전쟁 무기로 사용되는 것을 보고 매우 괴로워하다가 전재산을 털어 노벨상을 만들고 인류의 평화와 행복에 이바지한 사람들에게 이 상을 주도록 유언을 남겼습니다.



8. 노자(? -? 미상 )
중국 춘추 시대 잘기의 사상가이며 도가 사상의 창시가입니다. 초나라 고현 태생. 주나라가 쇠퇴하자 이를 한탄하며 숨어 살았습니다. 그는 모든 지혜나 꾸밈을 버리고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 것을 주장했습니다. 만물은 모두 '도'에서 나와 '도'로 돌아간다는 '무위자연'에 바탕을 둔 도가 사상은 공자의 유교 사상과 함께 중국 정신의 근본을 이루고 있습니다.



9. 노발리스(1772 - 1801)
독일의 시인, 소설가입니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엄격한 가정 교육을 받았으며 대학에서 법률, 철학, 역사학, 자연 과학을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 활발하게 문학 활동을 하다가 스물아홉 살의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낭만파 시인으로서, 연인이었던 조피 폰 퀸의 죽음을 계기로 쓴 시 '밤의 찬가'와 미완성 장편 소설 '푸른 꽃'이 유명합니다. 후기 낭만주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0. 노스클리프(1865 - 1922)
영국의 신문 경영자입니다. 아일랜드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런던으로 나와서 신문계에 뛰어들었습니다. 1894년 석간지 '이브닝 뉴스 앤드 포스트'를 사들여 발행 부수를 대폭 늘렸고, 1896년 '데일리 매일'을 창간해 쉬운 문장과 싼 가격으로 신문을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1908년에는 '더 타임즈'의 지배권을 손에 넣음으로써 세계적인 신문왕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알아차리는 재능이 뛰어나 살아 있는 동안 신물 발행에 한 번도 최고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이상 교과서 수록 세계 위인 나폴레옹 네로 난센 노벨 넬슨 노자에 대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고전 산문/화왕계 수삽석남 구복 여행 핵심 정리 분석

 오늘은 화왕계 수삽석남 구복 여행을 핵심 정리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줄거리(내용)을 살펴 보고 본격적인 핵심 정리를 하겠습니다. 화왕계 핵심 정리 분석 화왕계 줄거리(내용) 신라 신문왕 때 설총이 왕에게 충언(忠言)하기 위해 지은 우화로, 인간...